권력이란 무엇인가?


마리아노 포르투니 이 마르살이 그린 스케치(황소와 씨름하는 남자)(1855년에서 1860년)

권력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내가 여기서 답하고 싶은 질문이다. 이 글은 그저 내 생각을 빠르게 적어 본 것이며, 앞으로 글을 쓰면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완벽이라는 어떤 지점까지 다듬는 대신, 완벽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이 글은 날것으로 남을 것이다. 이것은 권력이 실제로 무엇인지 정의하려는 나의 솔직한 시도다.

메리엄 웹스터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권력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그중 내게 두드러지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행동하거나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 법적 또는 공식적인 권한, 능력 또는 권리
  • 타인에 대한 통제력, 권위 또는 영향력
  • 정치적 통제력 또는 영향력

영어에서 이 단어 자체는 상당한 무게를 지닌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간략히 요약하면, 권력은 자신을 주장하고, 확장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자신의 의지와 가치를 세상에 관철하려는 내면의 충동이다. 이러한 해석을 넘어, 종교적·철학적·정치적 사상 및 그 밖의 여러 사상 체계에는 권력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존재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도 이 논쟁에 뛰어들어 직접 이 질문을 곱씹어 보고 싶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나는 니체의 관점에 더 가깝다. 나는 권력을 자신의 의지와 가치를 세상에 관철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라고 정의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찾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카우보이 비밥에서 제트가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야 과거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필사적으로 찾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삶과 우주,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이라고 부르는 이 물질의 수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며,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지구의 광대한 생명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이와 비슷한 것을 위해 싸워 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고, 생존하며, 번식하기 위해서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바로 그 지점에서 종교와 철학, 혹은 다른 무언가가 개입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핵심 개념은 변하지 않는다. 생명도 없고 관찰자도 없는 우주는 아무것도 아니다. 적어도 무언가로 인식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고양이의 상태를 관찰할 사람이 없다면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고, 가능성 속에 매달린 채 결코 확정된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이 현실 속에 사는 존재들이 현실의 상태를 감지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그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발언권을 원하기 때문에, 삶은 무언가를 통제하고, 현실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며, 자신의 상태를 현실에 각인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이 된다.

필요한 권력의 양은 자신의 야망과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얼마나 밀어붙이고 싶은지에 달려 있다. 목표가 국가를 세우는 것이든, 가족을 이루는 것이든, 회사를 세우는 것이든, 결국 그것은 자신이 지휘할 수 있는 자원으로 귀결된다. 돈은 단순히 그러한 자원에 접근하기 위한 도구이며,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이자 하나의 기계다. 많은 수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사람들은 세상에 복리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돈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다. 돈은 궁극적인 자원인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이것을 사고 실험으로 자주 표현한다. 한 부자가 지도자에게 말한다. “당신은 자신이 강력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당신의 가치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가진 것의 일부에 불과해.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보다 부유하지만, 왕과는 거리가 멀지.” 지도자는 그저 웃으며 말한다. “물론 순자산만 놓고 보면 그들이 더 가치 있지. 하지만 차이는 이거야. 어느 날 오후, 서명 한 번으로 나는 그들의 순자산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

메시지는 간단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돈을 가지고 있지만, 돈을 가진 모든 사람이 진정한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돈은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인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절대적인 권력을 주지는 않는다. 돈은 퍼즐의 중요한 일부이지, 퍼즐의 중심은 아니다.

여기서부터 권력에 대한 나의 관점은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정치에 진입하려고 애쓰고, 내 회사를 시작하고, 자본을 조달하고, 튀르키예에서 전력망용 태양광 발전소를 시작하려 시도하고, 금융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나는 핵심적인 사실을 하나 배웠다. 돈, 지능, 재능, 친절함, 무자비함, 심지어 열심히 일하는 것조차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계와 다른 강력한 사람들에 대한 레버리지다.

그 레버리지는 단순히 거래적인 것이거나 게임의 일부에 불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정보일 수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하지만 오직 당신만이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나 접근권일 수도 있다. 심지어 그들의 지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약점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그것은 그들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게 할 만큼 그들의 자기 이익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왕들을 통제하고, 왕 중의 왕이 되면, 자원을 통제하고, 그 결과 사람들을 통제하게 된다. 자원을 직접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대신, 이미 자원을 보유한 사람들에 대한 권력을 얻게 된다. 정상에 도달함으로써 그러한 자원에 더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그들에게, 그들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충분히 큰 규모에서는 세계 자체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다. 내게 권력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관철하고, 자신이 적합하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주장하는 것과 같지 않다. 그래서 나는 파이트 클럽의 한 구절로 계속 돌아오게 된다. 타일러 더든은 자기계발은 자위이고 자기파괴가 진정한 답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혹은 자기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자기계발을 좇는 것은 자아를 살찌울 뿐인 반면, 진정한 변화는 그 자아를 허물어뜨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논쟁 역시 대부분의 경우 자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똑똑하거나 옳아 보이기 위해 논쟁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든, 온라인의 무작위 목소리든, 자신의 목표나 의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든, 대부분의 사람은 논쟁할 가치가 없으며, 그들과 얽히는 것은 그 순간 자신의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러니 싸울 대상을 골라라.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말고, 그저 자신의 의지를 앞으로 밀어붙여라. 누군가가 당신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값싼 말로 당신을 막아 보라고 내버려 두어라.

차이는 그 노력을 누구에게 쏟느냐에 있다. 자신의 목표나 의지에 실제로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논쟁하고, 영감을 주고, 그들이 당신에게 동의하거나, 당신을 두려워하거나, 당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하라. 그들을 당신의 뜻에 맞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말이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노력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인구의 대부분은 당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멈추지는 않는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권력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단순히 자원이나 관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 생각할 때 나는 미스터 로봇의 필립 프라이스가 한 말을 떠올린다. “의제를 강요할 수는 없어… 영감을 줘야 해.”

사람들이 자원으로서 강력한 만큼, 그들에게는 자유의지도 있다. 그들은 편안함, 자유, 의미, 혹은 이 셋의 조합을 향한 내면의 욕구를 지닌다. 힘만으로 그들에게 자신의 의제를 밀어붙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움직이려 하고, 그들을 통해 그들의 추종자와 자원을 움직이려 할 때 특히 그렇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과 종교, 더 큰 의미 체계가 다시 등장한다. 자신의 의지와 메시지, 목표와 목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 줄 수 있다면, 의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이 당신을 따르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두려움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훨씬 더 큰 통제력을 이 자원에 대해 갖게 될 것이다.

이 목적이나 사명은 임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당신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당신의 경험과 교육, 그리고 배우면서 적응하려는 의지에 의해 형성된다. 모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세상에 관철하는 의지는 사실상 당신이 살아남고 연구해 온 모든 것의 종합이다. 당신의 목표는 자신의 진화가 만들어 낸 최종 결과물이다. 이것이 메시지를 강력하게 만드는 이유다. 메시지는 단순한 의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과 지식을 통해 스스로 벼려 낸 살아 있는 진실이다.

많은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권력이나 왕들의 게임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게임을 하든 하지 않든, 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여전히 받는다. 게임에 참여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다. 느긋하게 평화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흐름 속에 있다. 여전히 야심가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자원 중 하나다. 나폴레옹 같은 인물이 나타나면, 그의 의지는 당신을 둘러싼 전체 지형을 재편한다. 당신의 환경을 휩쓸고 지나가는 폭풍처럼,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폭풍을 견디고 그것이 남긴 상흔과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의 총체 속에서 수동적인 관찰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단순히 부가 아니며, 수십억 명을 통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레버리지의 사슬이다. 당신의 야망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든, 그저 세계의 한구석을 지키는 것이든, 자신의 의지를 각인할 만큼의 권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당신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당신을 빚어 가는 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